집 앞 마른 개천에서 구조한 아깽이 형제들

집사의 일상

느긋한 듯 둔한, 진이

해리네 2021. 11. 29. 00:01

침대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고있다가 해리의 냐-앙! 한 마디에 발까지 부르르 떨면서도 결코 일어나 도망가지 않는 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지 참지 못하고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5고양이를 키우면서 단 한번도 목격해 본 적이 없었던 탓에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다. 멀리서라도 해리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만 하면 쌩하니 내빼기부터 하는 행복이와 달리 진이는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도 그대로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로 앞발만 바르르 떨고 있을 뿐 역시나 소리한 번 내지 못하고 얼어있었다. 그저 잠이 덜 깨어 그런것일까? 아니면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던 것일까? 야생의 배고픔이나 고생을 겪어본 적이 없는 녀석이니 적자생존의 경험이 없어 그럴 수도 있을것 같다. 그런 면에서 행복이와 진이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행복이의 경우 겨우 3개월 정도였을 때 이미 길고양이로서 배고픔과 강자에 대한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공격적이지 않다고 해도 집안에서 가장 큰 덩치와 힘을 가진 해리에게 감히 덤벼들 엄두는 커녕 멀리서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도망가기에 바쁜 것을 보면. 반면 진이는 동복형제인 레오와 함께 천방지축이다. 세상살이 이제 6개월에 접어들지만 진정한 배고픔을 몰라서인지 자신의 영역을 갖추고 힘이 센 고양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굳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늘 어설프고 느리지만 열심히 놀고, 열심히 먹고, 잠이 오면 내 손에 쭙쭙이를 하면서 잠든다. 최근 그 습관을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여 일부러 비협조적으로 녀석을 밀어낼때가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울면서 끝내 내 손가락을 제 침으로 흥건히 적시고서야 만족하던 진이도 요즘은 단념한 것인지 요즘은 자주 형제의 몸에 착 달라붙어 쌔근거리며 잠드는 일이 많다. 서로 잠들기 전까지 그루밍을 해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럴때면 그 귀여운 모습에 사진을 찍어대며 혼자 좋아하며 즐기기도 한다. 진이의 느림과 둔함은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고양이와는 많이 다르다. 보통 고양이는 위협을 감지하면 숨기 바쁘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한다고 한다. 특히 길고양이들의 먹이 확보를 위한 영역 싸움은 처참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후 며칠만에 고양이들의 습성이나 야생에서의 경험이 없이 병원과 집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 진이는 그저 떨어대면서도 얼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대처도 할 생각을 못하고 얼어있는 진이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차피 상대가 안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해버린 아닌가싶다. 야생의 경우 잔혹한 상대를 만났다면 그대로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복 형제인 레오의 경우 상대의 공격의도가 느껴지는 그 순간 바로 옆으로 누워 항복의 의지를 명백하게 드러내거나 여의치 않을때는 그저 납작하게 바닥에 배를 붙인 채로 상대가 물면 무는 대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그 순간을 모면한다. 우리 집 토박이 3냥이들은 나이로든 체격으로든 이 두 형제들은 상대도 되지 않음이 분명하니 그 나름의 대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진이의 행동은 오히려 선배고양이들에게 심히 거슬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살짝 귀를 물리거나 콧김 한 번으로 우세를 확인한 선배 고양이들은 레오의 행동에 그 이상 건드리지 않고 가버리지만 진이의 경우는 그저 떨면서 굳어있는 녀석에게 오히려 하악질과 함께 꼭 퍽 소리가 날만큼 센 펀치 한 두대를 날리고서야 풀어주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행동에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심하지 않은 경우 관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의 행동에는 가끔 정말 애매모호한 차이가 느껴지는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답답할 때가 많다. 아마 진이가 꼭 얻어맞고서야 일단락 되는 것은 왠지 눈치가 없는 것과 비례한 투지없음도 이유가 아닐까하는 느낌적인 느낌만 있을 뿐 인간인 나로서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