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마른 개천에서 구조한 아깽이 형제들

집사의 일상

진이, 어리숙한 아기 고양이

해리네 2021. 11. 26. 23:43

진이는 형제 고양이인 레오에 비해 골격이 크게 태어났다. 까만 털은 성장 할수록 윤기가 흘러 보기에도 후광이 비칠 듯한 모질을 가진 녀석인 것이다. 그에 비해 성격은 너무나 유순하고 소리를 내야 할 때도 입만 벙긋거리다 마는 것은 힘이 달려서 일까? 타고난 골격은 크고 단단하지만 그 속은 속 빈 강정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 이 녀석은 배가 고파서 식탐이 한창일 때도 급한 마음에 젖병을 잘 못 빨고 번번이 놓치거나 너무 급하게 먹어 사레가 들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젖병 물리기 초보였던 나도 녀석에게 분유를 먹일 때는 덩달아 긴장해서 더욱 합을 못 맞추어 더 고생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가끔 진이가 먹을 것을 잘 못 받아먹고 손에 덜어주는 것 까지도 레오에게 빼앗기고서는 입맛만 다시다가 괜히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훑는 모습은 너무나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운 것이다. 줘도 못 먹는 녀석이라 만약 야생에서 이런 모습이었다면 이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어미에게서 착실하고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더라면 조금 일찍 독립하게 되었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없이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생도 묘생도 ~을지도 모른다거나 ~했다면 따위는 맘에 둘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가끔 일이 풀리지 않거나 계속 엎어지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어 쌓이다 보면 가끔이지만 나도 모르게 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생(生)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넘기기엔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언제나 마음 가짐과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고 넘겨야지 더 미련을 느낀다고 한들 서러울 뿐이다. 그렇게 안쓰러운 녀석의 또 다른 습관은 손가락 쭙쭙이 인데 진이는 유독 한 손가락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웹툰 작가님의 고양이는 그래도 날마다 다른 손가락을 고른다는데 이 녀석은 취향도 한결같은가 보다. 늘 레오에 비해 둔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형제에 비해 성격도 힘도 약하고 둔하기 때문인지 진이는 잠투정은 있지만 레오와 함께 잠들 때면 평소보다 쉽게 깊이 잠드는데 오늘은 컴퓨터 의자를 점령한 레오를 따라 올라가더니 너무나 얌전히 잠이 들어버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모포를 둘러주고는 잠시 밥을 먹고 있었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방에서  쿵하고 약간은 큰 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그런 소리가 날 만한 물건은 없어 순간 놀라서 돌아보니 잠에 취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진이가 보였다. 다칠 만한 높이가 아님은 물론이고, 행동을 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단지 조금 멍한 상태로 제가 왜 거기 있게 된 건지 모르겠는지 레오를 올려다보며 떨어진 그대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안아 올리니 그제야 눈이 다 떠진 듯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고 있다. 따뜻한 형제의 체온과 모포에 둘러싸여 한잠 푹 자고 일어난 녀석은 평소보다 조금 더 활발하게 뛰어다니다 생선 냄새를 맡았는지 식탁까지 올라가 탐험을 하고 있다.

외모로만 본다면 약간 날카롭고 무심해 보이는 진이지만 실제로는 성격도 느긋하고 행동도 느린 진이. 반면 자신이 안심할 수 있다고 믿는 대상에게는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조금의 경계심도 없이 잠들어버리는 모습은 이리 둔한 고양이도 있구나 할 만큼 신기한 모습이지만 누나 고양이들에게는  먼저 장난을 걸어놓고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공격에 대비해 일찌감치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행동은 소심함이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다소 복합적인 녀석의 성격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겠지? 나에게 너무나 사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진이를 보면 어리숙한 지금 그대로 조금 느리게 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