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마른 개천에서 구조한 아깽이 형제들

집사의 일상

채리 발치 하는 날

해리네 2021. 11. 25. 00:51

은둔 묘 채리가 침대 위 이불속에서 며칠 동안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어슬렁거리는 일이 거의 없었고, 아깽이들이 한창 활기가 넘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녀석들을 따라다니며 어질러진 물건들이나 위험한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녀석들의 상태를 케어하느라 더 신경을 쓰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조용한 모습이 마음에 걸리고 자주 몸을 숨기던 곳이 아닌 침대 위 붙박이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뭔가 내게 알리고 싶어서였을까?

둔해빠진 나는 계속 신경이 쓰이면서도 별다른 이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이제 아깽이들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려니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는 채리가 아예 이불 속에 들어가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료를 먹는 모습을 며칠 동안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리 하루 종일 보고 있지는 못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안 보일 수가 있나? 그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이불을 들춰내고 억지로 녀석을 나오도록 만들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료 그릇 앞에서 그저 냄새만 맡다가 가버리는 것을.

그제야 녀석의 입 속을 확인한 나는 잇몸 색이 새빨갛게 변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병원으로 연락을 취해 상태를 전하고 발치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러나 당황이 가라앉고 나니 정확한 원인도 찾지 않고 발치 예약을 서둘러한 것은 섣부른 결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상태 확인을 위해 채리와 해리 두 마리를 챙겨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해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건강 그 자체라는 설명에 일단 안심할 수 있었지만 채리의 경우 이제 5년 차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이빨의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앞쪽 아래 송곳니는 잇몸이 부은 채 흔들리고 있었고 당장 x-ray로 확인이 필요한 이빨까지 포함해서 육안으로만 확인해도 3개 이상의 이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진 촬영을 마치고 확인한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다. 무려 5개 정도의 이빨이 잇몸까지 드러나 있거나 부은 잇몸 사이에 묻혀 당장 발치가 시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담당 선생님과 함께 의논한 끝에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생길 소지가 보이는 이빨까지 총 6개의 이빨을 발치하기로 결정하고  수술일정을 잡고 10시간의 금식 끝에 수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마취가 빨리 풀려 데리고 올 동안에는 약간의 침을 흘리는 정도만 있는 상태로 정신은 말짱하게 깨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3일간 지켜보았으나 다른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았고 3일간의 습식 사료를 잘 먹었다. 현재 5일분의 처방약을 다 먹은 녀석은 여전히 내 침대를 자신의 아지트 삼아 지내고는 있으나 이불 위에서 당당히 지내는 정도이고, 예전보다는 자주 거실이나 주방을 어슬렁거리거나 아깽이들의 귀찮은 놀자 공격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면서 활발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옷장 위나 베란다 문을 밀어 열어 창 밖을 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항상 내가 보이는 곳에 따라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 굳이 상태를 확인하려고 집 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지 않게 되어 전보다도 더 친밀해진 느낌이다. 게다가 아깽이들과의 사이도 좀 나아진 듯 같은 곳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거나, 가끔이지만 그루밍을 해 주고 냄새를 맡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등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라 그나마 빨리 치료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경우 보험이 생기고 있지만 아직도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은 여전하다.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다묘 가정이기에 5마리 모두 가입하고 유지하는 것은 현재 내 경제력으로는 무리이기에 고민만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 3마리였을 때에도 잔병치레가 많은 채리와 나이가 많은 해리 두 마리의 보험만 가입해 두었었지만 지출에 비해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다는 결과에 결국 계약 연장을 하지는 않았었다. 물론 그냥 전부 지불하는 것에 비해서는 도움이 되는 것이 맞지만 보험을 유지하는 비용이나 자비 부담금, 치료 범위의 한정이라는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계약 갱신의 필요성보다는 아직은 케어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녀석들은 내 곁에서 세월과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치료를 요하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제발 큰 병이 없기를 바랄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프지 않고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녀석들도 나도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대비는 해 두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 지는 만큼 하루빨리 현실적인 법 제정과 동물 보험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채리는 내 책상 옆에 있는 침대에서 열심히 그루밍하다가 푹 퍼질러진 반죽처럼 잠에 빠져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지금 녀석의 숙면보다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늘 조용하고 예민한 녀석에게 되도록 마취를 하는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의 아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있을 건 다 갖추고 있는 편이 좋을 테니까.

늘 누구라도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면 통장 사정을 이유로 자가 치료를 하거나 수술비용 걱정을 먼저 해야만 하는 상황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충실하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계속하면서 경제력을 이뤄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도 녀석들에게 덜 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