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마른 개천에서 구조한 아깽이 형제들

집사의 일상

이 사랑스러운 쫄보들

해리네 2021. 11. 22. 21:58

임시 보호 중인  2마리 형제 고양이들은 이제 겨우 예방 접종 1차를 시작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구조를 하게 되었지만 5마리를 돌보기에는 내 능력으로는 한계가 명확했기에 살려만 놓고 입양 사이트를 알아보든지 안되면 내보내야지 더 이상은 나도 너무 힘든 상황이라 키운다는 생각은 1도 없었고, 지금도 누군가  둘을 갈라놓지 않고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보내야지 하고  알아보았지만 여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는 터라 미루다 보니 아직 예방접종도 중성화도 하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집에 있는 예민한 둘째의 이빨 상태가 양치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심각해진 상태라 거금을 들여 부분 발치와 스케일링을 하게 되었다. 담당의사 선생님도 내 사정을 알고 계시는 덕에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할인되어 세이브된 금액으로 녀석들의 1차 예방접종을 하고 왔다. 별다른 이상 없이 개월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을 확인받으면서 돌아왔다. 물론 다시 한번 내 사정과 현재 이 녀석들의 입양 홍보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상황까지 상담 내내 하소연 겸 입양처 부탁을 재차 하고 오는 길이다.

빠듯한 살림에 또 오지라퍼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 중인 두 마리의 아깽이들을 발견하는 순간 차라리 내려와 보지나 말걸 하면서 후회도 살짝 되었지만 이미 보고 말았으니 다른 선택지가 내게는 없었다. 개미들에 둘러싸인 채 울지도 못하고 있던 치즈 태비(레이-> 레오)와 검정 비닐봉지인 줄로만 알았던 까망(진) 아깽이들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안타까움에 사료를 놓아두셨지만 미처 젖도 떼지 못한 녀석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고, 오히려 개미떼들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지들이 살 길이었는지 이사 후 조용하던 내 생활에 또다시 새 고양이들과의 인연은 사실 그다지 반갑거나 기쁘기보다는 안쓰럽고 불쌍하지만 누가 더 안쓰러운지는 알 수가 없다는 심정이었다.  나는 건강도 경제력도 시간도 여유롭지 않은 직장인이자 이제 막 겨우 사정해서 등록금도 부분 납부로 겨우 재입학한 빡빡한 과를 다니는 만학도이다.  게다가 이미 3마리의 모시고 있는 변변찮은 집사 된 몸이다.  

우리 집 고냥님들은 막내가 4년 하고도 7개월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혼자 유유자적 행복한 녀석이고,  둘째는 세상 모든 고양이와 사람이 싫고 귀찮은 예민한만큼 영리함을 가진 6년 차 치즈 묘 되시겠다. 그리고 대망의 첫째는 혼자 관심을 독차지하지 못할 바에야 다 필요 없으니 옥상에서 산책이나 해야겠다며 1일 2회 이상의 산책을 요구하는 산만한 덩치를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암갈색 고등어 태비를 가진 7년 5개월 차 어르신이시다.

다들 성격도 생활 방식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무지하게 쫄보들이라는 것인데 이제 묘생 5개월 차에 접어든 아깽이들 또한 언젠가부터 문 밖의 발소리에도 바짝 긴장하며 얼음이 되거나, 무심코 내 발에 걸려 살짝만 밀려나도 심히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나를 피해 다니는 것이다. 몇 년을 보아온 사람에게도 예외란 없이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서야 어딘가에서 쭈글 모드로 있다가 발견되고는 하는데 어찌나 냥냥 거리며 항의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때도 있다.  인터넷에서 주인이 병으로 입원한 2년 후에도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애틋한 고양이도 있더구먼...... 우리 집 쫄보들에게는 아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혹여 밥이 모자라면 왜 여태 제대로 된 밥상 차리는 법도 익히지 못한 거냐며 나를 쫓아와 한참을 잔소리인지 하소연인지를 늘어놓고는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사료를 먹어대는 식탐의 여왕, 푸짐한 엉덩이를 내 얼굴 아래에 갖다 대고는 아무 소리도 없이 엉덩이를 하늘로 추어올리고 한참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녀석은 나를 엄청 따르는 것 같지만 외출하고 돌아온 나를 볼 때마다 "누구세요?!!" 하는 겁먹은 얼굴로 마중은커녕 도망가서 숨기가 바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혜자 님의 말씀처럼 강아지풀로도 한 대 때려본 역사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첫째 놈은 내게 '이제 왔으니 되었다. 어서 나를 밖으로 모시거라' 하는 듯 냐~양하고 한번 소리를 내고는 나를 앞질러서 문 앞에 앉아있거나 열린 문 사이로 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 집 고양이들은 속에 뭐가 들었는지 다들 너무 제멋대로 인 것 아닌가? 물론 이런 와중에도 까칠 여왕인 둘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집 안에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하고, 둘째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반나절 넘도록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닌 적도 여러 번이라 이제는 안 보여도 그러려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 녀석이 잘 숨어있고 좋아하는 장소를 파악해 놓는 것은  집사로서의 기본 되시겠다. 여하튼 이렇게 귀가를 했든 집에 있었든 녀석들은 모두 마이 페이스로 제 좋을 대로 요구들을 해대고 맘 편하게 먹고 놀고 주무시는 것을 보면 참 맘 편해서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은 나도 "첫째야 밥 좀 차려와 봐라" "어~이 막내는 티브이 좀 틀어보고" 정도의 사소한 심부름쯤 시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쓸데없고 영양가도 없는 헛소리를 해대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만 낯선 기척을 느끼거나  낯선 내 모습에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숨어버리는 쫄보들이지만 하늘 아래 가장 소중한 나의 고양이 5남매들. 사랑한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잘 살아보자. 물론 아깽이 형제들은 좋은 사람에게 입양되어 더욱 사랑받으며 살게 되길 바란다.

까칠 여왕 둘째  " 왜? 뭐? 다가오지마. 관심 끄랬다!"